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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회
긴 줄의 공항 입국 심사를 끝내고 밖으로 나왔다. 일년 전 한달 반의 추억이 아직 그리운 이 곳을 다시 찾을 기회가 이렇게 갑작스럽고도 빠르게 찾아올 줄은 몰랐다. 히드로 공항의 하늘은 여전히 오고 가는 비행기가 흘리고간 구름이 마구잡이로 그려져 있다.

이제는 어색하지 않은 블랙캡의 어정쩡한 뒷자석과 다시 적응해야만 하는 도로의 LOOK RIGHT, 영국식 굴뚝을 생각하며 나의 가슴은 또 다시 설레임에 부풀었다.

나는 오후에 일과를 마치고 자주 런던 외각의 템즈강에 갔다. 그곳에서 조정 보트에 올라 노를 젖는 남자들, 근처 공원 잔디밭에 앉아 여름을 즐기는 가족들을 보며 비록 내 것이 될 수 없더라도 이런 풍경을 눈에 담으며 자유와 낭만을 느꼈다.

권태기
아침 출근길. 헬멧을 쓰고 자전거에 올라 페달을 밟으며 길을 양보하는 갈색 머리의 여자에게 가벼운 손짓으로 치어스라 말한다. 외국의 길들을 자전거로 다닌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왠지 모르게 신이 났고, 차로는 볼 수 없는 주변의 가까운 모습에 기분은 한없이 좋았다. 자전거 출퇴근은 어쩌면 영국 생활의 익숙함에 대한 상징과도 같았다.

하지만 모든 일이 다 그러하듯 익숙함이 좋은 의미로만 다가오지는 않았다. 한국과는 다르지만 매일 반복되는 업무에 지쳐만 갔고 영국에서의 생활 또한 점점 새로울 것이 없었다. 나는 새로운 자극을 필요로 했다.

요크, 케슬 하워드
고독한 메트로 폴리탄, 런던을 떠나 요크로 가는 기차에 탔다. 나의 여행 일정에 'King’s cross -> York(기차)' 이라는 한 줄의 짧은 과정에서 옆자리에 앉아 있는 중년의 일본 남자가 먹고 있는 샌드위치의 냄새와 서로가 동양인이라는데서 오는 묘한 경계심을 오랜 시간 견디며 창밖을 본다.

아마도 나는 지금 존재하지 않는 무언가를 찾기 위해 헤메이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쫒기듯 달려야만 하는 감옥같은 세상에서 탈출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바라는 것은... 이제 조금만 가면 낭만과 자유를 만나기를 기대하며...

기차역에서 나오자 도시를 둘러싸고 있는 성벽과 멀리 보이는 요크 민스터가 나를 반겨 주었다.

그리고 관광 안내소에서 우연히 하워드 성에 대해 들은 후 배가 고팠지만 점심을 잠시 뒤로 미루고 계획에 없던 그 곳을 향해 차를 탔다.

꽤 멋진 이곳의 성과 주변을 둘러본 후 멋진 호수와 분수대가 있는 정원에 누워 잠시 하늘을 바라 본다.

다시 요크로 돌아와 중세시대의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올드 스트릿을 걷는다. 조금전의 하워드 성이 상류 계급의 화려한 삶을 대표한다면 예전 푸줏간으로 쓰였던 샴블스 거리는 반듯하지 않은 건물 모양의 익살스러움이 가난한 서민들의 터전이였음을 말해준다. 이곳에서 분주하고 소란스러웠을 그 때의 모습을 상상한다.

런던행 기차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지금 공원 벤치에 앉아 음악을 들으며 오늘의 여행을 회상한다. 오랜 세월의 흔적을 잘 간직한 도시 요크. 점점 짙어져 가는 오즈강의 석양처럼 나의 요크 여행은 떠나야만 한다는 아쉬움으로 끝을 내린다.

우울한 날
귀국을 몇 일 남겨 두고 안도와 불안이 뒤섞인 가운데 갑작스레 외로움을 느꼈다. 나는 스스로를 위로하고자 아무도 없는 곳을 찾아 보슬비가 내리는 여름 밤에 무작정 밖으로 나갔다.

나와 아름다운 들판 사이를 갈라 놓고 서 있는 이 울타리 처럼 내 꿈 가는 길을 가로막았던 관대하지 않는 세상. 어둡고 우중충한 날씨와 어울려 나는 잠시 동안 염세주의자가 된다.

하나의 목적지를 가르키는 각자 다른 방향의 표지판들 처럼 인간의 삶도 어쩌면 본인의 선택과 의지에 상관없이 운명에 의해 이미 정해진 결과만이 기다리고 있는것은 아닐까…
가만히 두세요.
만지지 말아요.
나의 무엇을 당신이 아시나요,
그냥 지나가 줘요.

상냥한 침묵과
따스한 외면만이
오로지 나를 위로해 주어요,
날 내버려 둬요.

아무 것도 아무에게도
아무런 이야기도 하지 않아요.
누구라도 나를 온전히
이해할 수 없으니까.

귀향
히드로 공항 4번 터미널. 이곳은 새로운 여행을 시작하는 사람들과 출발한 곳으로 다시 돌아가는 사람들로 항상 분주하다.

마지막으로 비행기 창가에서 영국 땅을 바라본다. 어둠은 동쪽으로 날아가는 비행기의 속도 만큼 더 빠르게 찾아오고 나는 아침이 오는게 두려워 창문을 닫는다.

오랜 시간 아시아 대륙을 지나 비행기가 착륙한다. 창문을 열자 비 내리는 인천 공항의 모습이 보인다.
이제 각자 다른 이유로 모인 이방인들, 건조한 여름 바람, 분위기 넘치는 펍 그리고 더 이상 그 곳의 여유와 낭만은 내 곁에 없다. 나는 다시 화려한 네온 사인과 빌딩, 개인보다는 조직을 중요시 하는 사회에 왔다. 내가 사랑해야만 하는, 사랑하는 것들과 소중한 사람들이 있는 곳. 그래서 왠지 내리는 비가 서글픈 이 곳으로...

그 외 사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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